1999년 6월 너무나도 예쁜 유치원생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씨랜드 화재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후 4개월 뒤,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인천 인현동에서 화재가 발생합니다.
새천년이 얼마남지 않은 1999년 10월 30일, 인천 중구 인현동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사고로 56명이 사망했고, 78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또다시 일어난 이 끔찍한 화재사건을 이번 주 꼬꼬무에서 방송을 한다고 합니다.
1. 화재의 원인
화재가 난 건물은 인천 인현동에 있는 4층짜리 상가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 지하에는 노래방이, 1층은 고깃집, 2층은 문제의 호프집, 3층은 당구장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지하에 있던 노래방은 내부 수리 중이었는데 화재는 바로 이 노래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어이없게도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10대 2명의 불장난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화재는 벽을 타고 2층까지 번지고 불길과 유독가스가 출입구를 막으면서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다행히 1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화재가 일어난 것을 빨리 알아채서 건물을 탈출할 수 있었고 3층의 당구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출입구가 막히자 창문을 깨고 탈출을 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서 나왔는데 인천여상 8명, 경인여상 4명, 인천계상여고 3명, 광성고 4명, 정석항공과학고 3명 등 이날 사망한 56명 가운데 52명이 학생들이었습니다.
2. 피해가 컸던 이유
화재가 일어난 10월 30일에는 인천의 많은 학교들에서 축제가 있었던 날입니다. 축제 후 많은 학생들이 뒤풀이를 즐기기 위해 호프집을 찾았습니다. 때문에 학생 사망자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화재가 발생한 이후 학생들은 왜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일까요?
그 당시 50여평 규모의 호프집에는 1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굉장히 복잡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의자와 테이블이 가득 차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매우 좁은 상태였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빨리 움직일 수 없었고 서로 뒤엉키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입니다.
호프집의 내부 벽재는 불에 잘타는 우레탄 등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졌습니다. 하나뿐인 출입구는 불길과 유독가스로 막혀버립니다. 창문 또한 열 수 없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창문으로의 탈출도 불가능했습니다. 비상시에 사용하는 탈출구도 합판으로 막아놨다고 합니다.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공사중이던 지하 노래방의 인부들이 공사에 방해가 된다며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스프링클러를 제거한 것 또한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만 제대로 작동해서 노래방의 화재가 초기에 진압만 되었다면 이렇게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처음부터 의문점이 하나가 있었는대요. 미성년자는 호프집 출입이 금지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불법영업입니다. 이 라이프 호프집은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 적발되어서 이미 영업정지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호프집주인은 이를 어기고 계속 가게 영업을 했고 참사가 일어난 당일에도 여전히 미성년자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것은 불이나자 사람들이 대피하기 위해 출입구로 몰렸는데 주인이 문을 막고 돈을 내고 나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재가 커지자 주인은 자신만 아는 비상구로 대피해 버립니다.
3. 사고 이후
호프집 주인은 사고 직 후 도망쳤다가 며칠 후 자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5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4년 사고 현장 인근에 인천 학생 교육문화회관이 생기면서 위령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오늘의 꼬꼬무 또한 많이 답답하고 슬픈 내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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