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SBS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저는 매주 챙겨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12월 9일(목)에 이 프로그램에서 씨랜드 화재 참사 사건을 다룬다고 하는대요.
이 참사가 1999년도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아마 어린 친구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씨랜드 참사는 지금부터 22년 전인 1999년 6월 30일 밤 12시 30분쯤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에 위치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사고입니다.
화재 당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는 소망유치원 원생 42명, 예그린 유치원 원생 65명, 공릉 미술학원 원생 132명, 열린유치원 원생 99명, 이월드 영어학원 원생 74명,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등 총 544명 있었는데 화재가 발생하여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한 23명이 사망하였습니다.
1. 화재 원인
사고가 발생하고 3일 후인 7월 2일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화재의 원인이 모기향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모기향이 엎어지면서 가연성 소재로 된 건물에 불이 옮겨 붙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국과수가 철저한 현장검증 없이 3일 만에 결과를 발표한 것에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7월 6일에 한국화재보험협회에서 그리고 7월 9일에 PD수첩에서 같은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유가족들은 전부터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전기 누전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모기향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것과 전기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책임소재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모기향 때문이라면 소망유치원 원장에게, 전기누전이라면 관련된 공무원들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법원에서는 모기향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최종 판결이 나왔습니다.
2. 피해가 커진 이유
화재로 사망한 유치원생 19명 중 18명이 소망유치원 원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이월드 영어학원 원생이었습니다. 소망유치원이 피해가 컸던 이유는 바로 인솔교사들의 무책임함 때문이었습니다.
사망한 소망유치원 원생 18명은 출구 바로 옆의 301호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 방에는 인솔교사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여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고 있던 방에 인솔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이들은 전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이없게도 그 시간 교사들은 밖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한 교사들은 불이 났어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소망유치원생이 묵었던 301호의 맞은편에서 자고 있던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은 전원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들의 묵었던 2개의 방에는 각각 인솔교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도초등학교의 교사들은 불이 나자 침착하게 학생들을 대피시켰고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 다른 어린이들을 더 구조하기도 했습니다.
대피시키는 도중에 교사 1명이 사망했고, 이 외에도 레크레이션 강사 3명이 아이들을 구조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사고지역이 무선통신 난청지역이라서 신고가 늦은 점도 피해가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오산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건 화재가 나고 1시간 후였는데 소방서에서 씨랜드까지의 거리는 70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 당시에는 도로도 좋지 않아서 소방차가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1층 콘크리트에 2,3층 컨테이너로 지은 건물인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저가의 제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해당 컨테이너는 열전도성이 강했으며 이음새에도 용접이 아닌 실리콘을 바르고 목재와 샌드위치 패널 등 인화성 물질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재경보기는 작동을 멈췄고 소화기는 텅텅 비어있어 피해를 더 키웠습니다.
3. 수습 과정
사망자의 상당수가 골격이 작은 유아들이고 거센 불길로 시신의 상태가 안 좋아 국과수 측은 신원 확인에 2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치아 대조 및 유전자 감식, 병원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신원 확인은 닷새 만에 완료되었습니다.
화재가 다 진압되고 소방대원들이 들어갔을 때 아이들의 시신은 방문 앞에 모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에는 손톱자국이 수없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참사 이후 희생자들의 유해는 국과수로 이송되었고 서신면사무소와 서울 강동교육청에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그리고 8월 7일 올림픽 공원에서 합동 영결실을 치른 이후 2001년 서울 마천동 어린이 안전공원 내에 추모비가 세워졌습니다.
4. 관련자 처벌 내용
경찰 조사 과정에서 씨랜드와 화성 군청 간의 비리 사실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해당 시설 건축주 겸 수련원장 박재천을 비롯해 공무원, 화성군수까지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습니다. 또한 사건 당일 술을 마신 인솔교사들은 전부 구속되었고 토지 소유주 김씨는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최고 책임자인 김일수 전 화성군수는 이 사건으로 군수직에서 사임하였으나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씨랜드 원장 박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및 금고 5년, 소망유치원 원장 천씨는 금고 5년이 선고되었습니다. 아직 피우지도 못한 꽃같은 아이들이 하늘나라에 갔는데 형이 너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씨랜드 참사가 발생한 1999년도에는 제가 아직 학생이어서 '또 대형사건이 터졌구나'라는 정도의 생각만 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에는 깊이 공감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이제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이 참사가 얼마나 끔찍한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 너무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 꼬꼬무를 보면서 정말 많이 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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