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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격 1954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22.01.13 꼬꼬무)

by ★★♥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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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6(목) 꼬꼬무의 내용은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원이라는 거액의 현금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음 주 내용에 대한 예고가 나왔는대요.

 

스위스월드컵

'출격 1954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바로 1954년에 열린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은 3년동안 엄청난 희생자를 내며 1953년에 한국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끝이 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1년 후인 1954년, 한국은 폐허 속에서 일본과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을 치루게 됩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1,2차전을 치루게 되어 있었지만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인이 한국땅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면서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루게 됩니다.

 

스위스월드컵
스위스월드컵

 

스위스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이유형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일본을 이기자 못한다면 선수단 전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감독과 선수단이 일본을 이기기 위해 비장하게 싸웠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스위스월드컵
스위스월드컵

 

한국은 일본과의 1차전에서 5대 1로 대승을 거둡니다. 그리고 2차전에서는 2대 2 무승부를 기록하며 스위스 월드컵 출전권을 따냅니다. 

 

스위스월드컵
스위스월드컵
스위스월드컵

 

한국과 일본의 첫 번째 경기는 3월 7일 오후 2시 도쿄의 신궁 경기장에서 열립니다. 전날 밤 눈이 와서 그라운드의 상태는 최악이었고 일본 축구대표팀의 장점인 짧은 패스와 지공은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끈질긴 압박을 통해 일본을 무력화시키고 예상외로 5대 1의 대승을 거둡니다. 체력과 발기술이 뛰어난 한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압도한 것입니다. 일본은 경기 내내 방어하는데 급급했고 결국 한국의 날카로운 공격에 무너졌습니다.

 

스위스월드컵
스위스월드컵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한국은 8개월 전까지 북한과 전쟁을 치렀다. 폐허 속에서 훈련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였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1차전의 5대 1 승리는 역대 한일전에서 최다골 승리이자 원조 도쿄 대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위스월드컵

 

이렇게 한국은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합니다. 

선수단은 단복이 없어서 양복을 빌려 입고 등번호는 실로 새겨야 했지만 열정만은 가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스위스까지 가는 길부터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선수단은 배를 타고 일본에 간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경유를 거듭하며 첫 경기를 불과 10시간 앞두고 스위스에 도착합니다. 경기장 적응 훈련은 고사하고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하게 된 대표팀은 헝가리와의 첫 경기에서 0대 9로 참패를 당합니다. 

 

스위스월드컵

 

열정과 투지가 가득한 우리 대표팀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싸웠고 골키퍼 홍덕영은 가슴에 멍이 들고 갈비뼈가 울릴 정도로 강한 공을 여러 차례 막아냈습니다. 당시 우리와 경기를 치른 헝가리 대표님 감독은 "한국팀은 사자처럼 용감했다"라고 칭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표님은 터키와의 이어진 경기에서 0대 7로 패배하며 한대회 최다 실점 기록을 남기면 쓸쓸하게 귀국해야 했습니다. 

 

스위스월드컵

 

다시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은 30년이 흐른 뒤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입니다. 이 이후로 매 월드컵마다 본선에 진출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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